신해혁명 (2011)
1911년의 신해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작품이다.
황하강사건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손문이 이끄는 혁명동맹회는 1911년 4월 광저우에서 황싱의 지도아래 100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봉기를 일으킨다. 그러나 이 봉기는 실패로 끝나고 만다. 이 봉기에서 72명이 생명을 잃고 이들은 황화강에 매장된다. 영화에선 최종적으로 82명의 열사가 희생된 것으로 정리된다.
이후 청조의 철도 국유령과 이를 담보로 한 4개국 차관 도입으로 쓰촨 등지에서 무장투쟁이 발발한다. 청조를 이를 진압하기위하여 후베이 신군을 이동시키고, 10월 10일 우창에서 신군내의 혁명파가 봉기하여 성공한다.
황싱이 우창에서 혁명군을 이끌고, 미국에 있던 손문은 유럽으로 가서 4개국 차관을 보류시키는데 성공한다.
그동안 위안스카이의 북양군이 청조의 명에 의해 혁명군을 토벌하게된다.
위안스카이는 청조와 혁명군 사이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도모하기위하여 소극적으로 임한다.
귀국한 손문은 1912년 1월 1일 임시대총통이 되어 남경정부를 수립한다.
위안스카이와의 교섭을 두고서 손문과 황싱은 의견을 달리한다.
영화는 이후 위안스카이가 청조를 퇴위시키고 대총통이 되는 과정까지 진행한다.
중화민국의 탄생과, 혁명열사들의 희생을 기념하는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영화는 손문의 혁명 이념을 이어받아 중국공산당이 인민혁명으로 계승한 것으로 정리된다.
전형적인 선전영화이지만 중국 근대사를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감독 : 성룡, 장리
출연 : 성룡, 조문선, 리빙빙, 조안 첸, 손순, 강무, 여소군
평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