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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 이민진

바람속 2024. 1. 26. 01:10

 소설의 첫 무대는 항구도시 부산 끄트머리에 있는 폭 8킬로미터 정도의 작은 섬 영도다.

 어부의 아내가 낳은 세 아들 중 윗입술이 세로로 갈라지고 한쪽 발이 뒤틀린 채로 태어난 큰 아들 훈이만 살아남아 어른이 된다. 막내는 홍역으로, 반편이 같던 둘째는 소에 받혀 허망하게 죽었다.

 이들은 하숙인을 치며 어부로 살아간다. 1910년 훈이가 스물일곱살에 일제가 강제로 조선의 통치권을 빼앗고 식민지로 삼았다. 다음 해 스물여덟에 언청이 훈이는 이 섬 반대편의 우거진 숲 너머에 살고 있는 소작농의 딸 양진과 혼인한다. 소작농인 양진의 아버지는 총독부가 근래 벌인 토지조사사업으로 땅 주인이 땅을 빼앗기는 바람에 그나마 짓던 농사마저 짓지 못하게 된 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

 소설은 훈과 양진 부부부터 4대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다. 이들 부부가 낳은 네 아아 중 살아남은 외동딸 선자가 중심이다.

 선자의 첫사랑이자 아들 노아의 친부인 고한수와의 첫 사랑과 이별, 목사인 백이삭과의 결혼과 일본 오사카로의 이주, 백이삭의 형인 백요셉과 그의 아내인 최경희와의 삶, 두 번째 아들로 이삭의 아들인 백모세의 출생이 이어진다.

 신사참배에서 소리없이 주기도문을 외우던 중국인 교회 관리인 후가 빌미가 되어 경찰에 끌려간 백이삭의 죽음, 나가사키에서 미군 폭격에 입은 화상으로 내내 괴로워하던 백요셉의 죽음, 김치 장사를 하며 가족과 자식들을 위해서 살아나가는 선자의 삶이 담담히 펼쳐진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노아의 와세다대학 중퇴, 가족과 단절하고 홀로 나가노의 파친코장에서 일하며 가족을 일구었던  그는 16년 만에 어머니 선자가 찾아온 이후 죽는다. 책은 '선자가 사무실에서 나가고 몇 분 후, 노아가 총으로 자살했다.'라고 적어놓을 뿐이다. 순수에 대한 그의 집착이 죽음에 이르게 한다.

 파친코로 크게 성공한 모세, 외국계 은행원이었던 그의 아들 솔로몬도 결국 아버지의 파친코 사업을 물러받는다. 그것이 차별받는 재일 조선인들의 삶의 방식이다.

 노아가 죽은 후 11년째 이삭의 무덤을 찾아 선자가 두 아들의 사진이 든 열쇠고리를 묻는다. 그리고 묘지 관리인으로부터 노아가 매달 마지막 목요일에 찾아왔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야쿠자 보스로 선자와 아들 노아를 내내 돌본 고한수는 이 소설의 두 번째 축이다.  그리고 그의 부하로 북한 귀국선을 타고 떠난 김창호도 기억하고 싶다.

 손에서 쉽게 내려놓지 못한 책들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