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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1차 세계대전 - A.J.P. 테일러 본문

나의 책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1차 세계대전 - A.J.P. 테일러

바람속 2023. 7. 28. 18:17

 터키의 소유로 많은 반란의 무대가 되었던 보스니아와 그 자매 지역인 헤르체고비나는 1878년 이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관리하에 있다가 1908년 합병되었다. 주민들은 남슬라브족으로 세르비아인이나 크로아티아인이었는데, 많은 이들 특히 젊은이들이 세르비아와의 합병대신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게 된 데 대해 분개했다.

 민족주의적 열광에 사로잡힌 청년들은 합스부르크가의 관리들을 살해할 계획을 세웠고,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를 방문한 합스부르크가의 상속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부인이 가브릴로 프란치프에 의해 사살된다.

 이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통치자들은 세르비아에 7월 23일 최후 통첩을 보냈고 이후 7월 28일 전쟁을 선포한다.

 세르비아의 후원자 러시아가 이에 맞서서 7월 30일 동원령을 결정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동맹국 독일은 1892년부터 1906년까지 독일군 참모총장이었던 슐리펜의 생각 '동원은 전쟁을 의미한다'에 따라 러시아에게 12시간 안에 동원을 해제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지만 러시아는 이를 거부하며, 8월 1일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한다.

 저자는 1차대전의 대전략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두 가지를 들고 있다. 하나는 병력을 동원하는 외교적 시위에서 수백만의 병력을 신속하게 동원할 방법은 철도뿐이었고, 철도 시간표는 즉흥적으로 변경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시간표가 일단 돌아가기 시작하면 화차와 객차는 미리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가차 없이 반드시 달려가야만 했다.

 두 번째 요소는 결정적이고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유럽 모든 나라의 군 당국은 현대전에서 공격만이 효과적인 수단이고 심지어 방어를 위해서도 공격이 필수적이라고 믿었다. 이전의 러일전쟁과 발칸전쟁으로부터 심지어는 한 세기 전의 미국 납북전쟁으로부터 방어가 점점 더 강해질 것이고 공격은 더욱 어려워지리라는 교훈을 얻지 못했다.

 독일의 벨기에 침공은 영국의 참전을 불러왔고, 독일 유보트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은 미군까지 참전하도록 했다.

 참호전으로 일관한 제1차 대전의 전선, 그리고 갈리폴리 전투 같은 무모함의 연속이다.

 저자는 당시의 정치가, 특히 장군들에게 신랄한 비판을 퍼붓는다.

 전쟁을 통하여 프랑스와 독일은 각각 150만 명, 러시아도 그 이상, 대영제국은 거의 100만 명, 영국에서만 75만 명이 희생되어 전대미문의 전사자 수를 기록한다. 미국의 손실은 8만 8천 명뿐이다. 게다가 더 많은 사람들이 불구가 되었다.

 전쟁의 결과 이전의 지배계급은 사라지고 민주주의와 독재정권이 그 빈자리를 채운다.

 영국은 한 번의 대규모 전쟁에서 싸우고 나자, 또 다른 대규모 전쟁이 일어나면 싸우지 않겠다고 결심했으며, 그들의 유일한 관심은 독일과 프랑스를 화해시키는 것이었고, 이는 사실상 프랑스의 희생으로 독일에게 양여를 주는 것을 의미한다. 미미국인들은 윌슨이 이루어 놓은 일을 부인하고 다시 고립으로 돌아갔다.

 제1차 대전은 유토피아를 만들어 내지 못했으며, 태초부터 인간이 이를 위해 기울여온 모든 노력과 다르지 않은 운명이었다고 결론짓는다.

 이 책은 연도별로 전쟁사항, 각국의 정치상황, 사회와 경제상황까지 설명한다. 책에 등장하는 당시의 사진들을 통해서 1차 대전이 사람들의 역사임을 절절하게 한다. 기꺼이 일독의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