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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페타르 : 세계대전의 서막 (2018)

바람속 2020. 2. 25. 04:13

 1904년 세르비아의 왕으로 즉위한 페타르1세는 1914년 6월 24일 알렉산다르 왕세자를 섭정으로 내세우고 일선에서 물러난다. 1844년생으로 70의 고령이었다.

 그러나 불과 4일 뒤인 6월 28일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왕위 후계자인 프란츠 페르디난드 대공이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당한다. 이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7월 23일 세르비아 왕국에 대하여 10개항의 최후통첩을 48시간내 답변을 요구한다.

 세르비아는 자국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직접적인 활동을 요구한 두 항목을 제외하고는 모두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러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모든 조건의 수용이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이유로 7월 28일 선전포고후 세르비아를 침공한다.

 영화는 이러한 과정과 이후 세르비아의 대 오스트리아 방어전으로 진행된다.

 어쩔수없이 복귀한 페타르1세는 각국에 도움을 요청하고 이에 응한 프랑스의 원조 물자를 기반으로 개전 초기에 효과적으로 오스트리아군을 격퇴한다. 그러나 이후 포탄 등 물자부족속에 시달리며 불가리아까지 침공하자 위기에 처한다. 당시 세르비아는 포탄을 전량 수입해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이에 페테르 1세는 결연히 알바니아 산맥을 넘어 후퇴를 천명한다.

 1915년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의 혹독한 추위속에 알바니아 해안에 도착할때까지 40 여만명의 인원 중 절반이상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영화에서 혹독한 참상이 여과없이 그려진다. 알바니아의 보복 학살까지도 있었다. 

 그리스의 코르프섬에 도착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결국 세르비아는 승전국이 되며 페테르1세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를 병합해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수립한다.

 그는 1921년 사망하였으며 해방자 페타르1세로 추앙받는다.

 영화는 페타르1세외에 포병인 병사 마린코, 소년 병사 몬칠로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여 진행된다.

 세르비아와 발칸반도내 여러 민족간의 갈등에 대하여 다시 한번 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 작품이었다.

 페타르1세는 프랑스 외인부대에서 신분을 숨기고 복무하여 대위로 전역했고, 영화속에서 주요한 소재가 되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도 직접 번역하였다고 한다.

 1차 세계대전에서 세르비아는 120만명 이상의 군인과 민간인이 사망하였다. 이 수치는 전체 인구의 3분의 1, 성인 남성의 60%가 사망한 것이다.

감독 : 페타르 립스톱스키

출연 : 라자르 리스토브스키, 라도반 부요비츠, 밀란 콜라크, 이반 부이츠, 다니카 리스토브스키

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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