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록
아몬드 - 손원평 본문
책의 시작은 충격이다.
'그날 한 명이 다치고 여섯 명이 죽었다. 먼저 엄마와 할멈, 다음으로는 남자를 말리러 온 대학생, 그 후에는 구세군 행진의 선두에 섰던 50대 아저씨 둘과 경팔 한 명이었다. 그리고 끝으로는, 그 남자 자신이었다. ~~~ 나는 그 모든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언제나처럼 무표정하게.'
무표정하게 보고 있던 소년, 윤재, 그의 생일인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 엄마와 할머니와 함께 평양냉면을 먹으러 갔다가 이 사건을 겪는다. 그 남자는 보통의 삶을 살던 '소시민'이었단다. 사 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기업에서 십사 년간 영업직으로 일하다가 경기침체로 갑작스로운 구조조정을 당한 후 퇴직금으로 치킨집을 차리지만 이 년이 지나지 않아 문을 닫고, 그 와중에 빚을 얻었고 가족은 떠난다. 그 후 남자는 자그마치 삼녀 반 동안 반 지하 방에서 기거하며 근처 슈퍼에서 물건을 사거나 어쩌다 구립 도서관에 들르는 것 말고는 일절 집안에서만 생활했다. 죽은 범인은 이런 유서를 남긴다.
'오늘 누구든지 웃고 있는 사람은 나와 함께 갈 것입니다.'
윤재는 만 네 살이 지나도록 좀처럼 웃지 않았다. 이런 그에게 의사들이 내린 진단은 감정 표현 불능증, 다른 말로는 알렉시티미아다.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고, 사람들의 감정을 잘 읽지 못하고, 감정의 이름들을 헷갈린다. 의사들은 선천적으로 내 머릿속의 아몬드, 그러니까 편도체의 크기가 작은 데다 뇌 변연계와 전두엽 사이의 접촉이 원활하지 못해서 그렇게 된 거라고 입을 모았다.
편도체가 작으면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가 공포심을 잘 모르는 거란다. 두려움을 잘 모르기에 차가 돌진해도 그대로 서있은 멍청이다. 공포심 둔화 외에 전반적인 감정불능까지 오는 매우 드문 경우란다.
윤재의 아빠는 그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술 취한 오토바이가 아빠의 액세서리 좌판을 덮치면서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는다.
윤재를 낳고 홀로 칠 년을 버티던 엄마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하고 윤재는 그렇게 엄마, 할멈과 지낸다. 엄마는 수유동 주택가 골목에서 헌책방을 열면서 제법 세상을 야무지게 살아나갔었다.
할멈의 장례식 후 여드레 후, 열일곱이 된 윤재, 헌책방 이층의 빵집 사장 심박사의 도움아래,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찾아가고 헌책을 팔면서 윤재는 고등학생의 삶을 살아간다. 의사였던 심박사가 빵을 만나는 이유도 가슴 아프다.
그러다 우연히, 누군가의 잃어버린 아들 노릇을 대신하게 된 윤재, 그리고 진짜 아들인 윤이수 '곤'과 같은 반 아이로 만나게 된다. 곤은 이수가 스스로 갖은 아이다. 윤재와 곤의 피곤하고 의미 없는 대결이 이어진다.
그러다 둘은 어느새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여기에 달리기를 좋아하는 여자아이 도라가 윤재에게 다가온다.
곤과 도라, 두 사람에게 처음으로 느끼는 윤재의 감정이 시작되고 깊어진다.
곤이를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제일 쉬운 일을 윤재는 한다.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곤이 대신 칼을 맞은 윤재, 죽었다가 살아난다. 눈을 뜬 그에게 심박사는 몇 차례 찾아온 도라가 남긴 카드를 전해 준다. 카드 속에 든 건 사진 한 장, 육상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자마자 구 대회에서 2등을 했단다.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곤이는 아직 윤재를 만날 준비가 안되었다고 한다. 곤이가 남긴 편지. 꾹꾹 눌러쓴 뭉특한 글자가 몇 개 적혀 있다. '미안하다. 그리고 고마워, 진심'.
그리고 예상대로 휠체어를 타고 엄마가 등장한다. 윤재는 눈물을 흘리며 운다. 그런데 또 웃는다.
저자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괴물로 만드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한 거란다.
나는 나의 감정을, 마음을 내내 의식적으로 느끼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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