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록
바람의 화원 - 이정명 본문
이 책에는 그림이 많다. 무려 김홍도와 신윤복의 작품으로 34작이다.
작가는 이 그림에 맞춰서 나름 정교하게 스토리를 전개해 나간다.
기록에 의하면 김홍도는 1745년생, 신윤복은 1758년생, 둘의 나이차는 열셋이다. 책에서처럼 사제지간으로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둘 다 도화서의 화원이었으며, 김홍도는 1771년 왕세손의 초상화를, 1773년 영조의 어진 제작에 참여하였으며, 1781년 어진화사가 되어 정조의 초상화를 그렸다. 1789년에는 정조의 밀명으로 쓰시마섬으로 건너가 일본 지도를 그려가지고 오기도 했다.
신윤복에 대한 기록은 1928년 오세창이 쓴 '근역서화징'에 나오는 두 줄이 유일한 기록이다.
'신윤복, 자 입부, 호 혜원, 고령인, 첨사 신한평의 아들, 벼슬은 첨사다. 풍속화를 잘 그렸다. 부친 신한평은 화원이었다.' 그뿐이다.
저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화원이 역사 속에서 완벽하게 사라졌던 이유를 찾아 나름의 대답을 만들어 냈다.
근본적인 답은 그녀가 여자이며 신한평의 자식이 아니라 친구 서징의 딸이라는 것, 서징은 대화원인 스승 강수황의 죽음을 조사하다 역시 죽음을 맞는다. 윤복의 천재성을 알아본 신한평의 제안으로 그의 아들이 되어 아버지를 죽인 자를 찾아내어 복수한다. 정조의 비밀 명으로 강수황의 죽음을 조사하던 김홍도도 내내 함께 한다. 여기에 정조가 강수황에게 부탁하여 그린 사도세자의 어진 찾기도 곁들여진다.
그런 한편엔, 윤복에 대한 김홍도의 애절한 연가가 내내 이어진다. 정조의 명에 의한 홍도와 단원의 풍속화 대결도 함께 한다.
한편, 당대의 대행상 김조년은 두 사람의 대척점에 서있는 자로 두 사람의 정교한 계산속에 몰락해 간다. 김조년의 개인 화원이 된 신윤복이 그림의 소재와 구도, 색의 배합을 통하여 그의 마음을 지배했음을 김홍도가 밝힌다.
그러나 내겐 저자의 대답을 정답으로 받아들이긴 어려웠다.
그럼에도 작가가 짜놓은 소설적 허구의 세계에 푹 빠져서 지냈다. 촘촘한 스토리의 그물은 너무 조밀했다.
신윤복의 미인도에 자신의 모습을 남겨두고서, 이후 전설로 바람으로만 남는다.
이 책에 소개된 그림의 설명이 소설에 담겨있다. 또 다른 느낌으로 오는 그림이다.
저자의 다른 책을 읽을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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