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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 - 김세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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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 - 김세진

바람속 2024. 5. 21. 00:44

 이 책은 1603년부터 1868년까지 265년간 일본을 평화롭게 이끌어오던 에도막부 시대가 서서히 저물어가던 1830년 8월 4일, 조슈번(長州藩)의 수도인 하기(萩)에 살던 최하급무사 스기 유리노스케의 3남 4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난 요시다 소인의 29년에 걸친 불꽃같은 삶과 그의 사상, 그가 세웠던 사설 학교 쇼카손주쿠(松下村塾)의 학생들에 대한 소개로 이루어져 있다.

 요시다 쇼인에 들어가기전 그가 태어난 조슈번에 대하여 먼저 알아야 한다. 조슈번의 다이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충실한 부하였던 모리 데루모토로 히데요시 사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벌인 세키가하라 전투의 서군 총대장이었으나 패한 후 근거지였던 히로시마에서 쫓겨난 곳이 현재의 야마구치현인 조슈번으로 기존 영지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이후 모리의 후손들은 대대로 조슈번을 다스리면서 에도막부의 지배를 받았지만 태생적으로 막부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된다. 그러나, 조슈번은 농업에 치중한 다른 번들과 달리 제지 등의 경공업방식으로 경제를 전환하고, 계속해서 토지를 개간하여 1백만 석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교육과 인재양성에 힘을 쓴다.

 에도막부 말기에 조슈번은 이러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서양식 군대를 기를 수 있었고 메이지유신을 이끌게 된다. 19세기 서양세력의 등장과 함께 촉발된 존왕양이 사상의 대두속에 젊은 사무라이들이 일어서게 되고 이들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준 지도자가 바로 요시다 쇼인이었다.

 5세에 요시다 쇼인은 후계자가 없던 아버지의 동생인 병학사범 요시다 다이스케의 양자가 되어 일종의 군사학인 야마가류 병학을 배우게 된다. 이후 다른 학업에도 뛰어난 재능을 나타내면서 번주의 배려로 21세에 규슈지역 탐방에 이어 에도 유학을 통하여 새로운 학문과 세계를 견문하게 된다. 23세에 여행허가증 없이 동북지방을 유람하지만 이로 인하여 막부에 의해 근신형을 받은 쇼인은 조슈번으로 강제 이송된다. 24에 아버지 유리노스케의 청원으로 10년간 자유로운 여행을 허락받게 된 쇼인은 다시 길을 떠나 견문을 넓히며 각지의 인사들과 교류하게 되고 쇼인의 명성도 높아간다.

 이때 1853년에 이어 다음해 미국 페리함대가 개항을 강요하게 되고, 해외 문물에 목말랐던 쇼인은 1살 어린 카네코 시게노스케와 함께 나룻배를 타고 페리함대에 도항하여 미국으로 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한다. 그러나 이들의 도항요청을 거절되고 이 사실이 발각되어 쇼인은 고향으로 유배되어 집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근신형을 받게 되지만, 조슈번은 결국 그들을 감옥에 수감하며, 1855년 1월 시게노스케는 병세가 악화되어 사망하고, 쇼인은 1년이 채안 되는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쇼인은 감옥에서 학업을 계속하면서 다른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여 감옥을 자신의 학교로 바꾸어버린다.

 12월에 석방된 쇼인은 감옥에서 자신이 미국으로 떠나려 했던 목적과 그 배경 등을 담은 유수록은 썼으며 이 유수록에 정한론의 근본 주장을 담는다.

 27세가 된 쇼인은 친척이 하던 개인학교 쇼카손주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29세에 막부타도를 계획하여 막부의 고위관리 미나베 아키카츠를 암살하려 한다. 이를 알게 된 조슈번주는 다시 그를 감금하게 되고 이어 에도막부로 이송되어 1859년 10월 27일 사형에 처해진다.

 2년 10개월 간 쇼인의 쇼카손주쿠에서 교육받은 92명의 제자중에서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모토 등 2명의 일본 총리, 4명의 장관 등을 포함해 일본의 영웅으로 여겨지는 22명의 유명인사가 배출되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막부 타도 과정에서 희생되었다.

 그의 교육 방법과 삶의 방식 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해 보인다. 그의 사상을 바탕으로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거쳐 결과적으로 일본 제국이 되고 말았다.

 미토학, 고사기와 일본서기, 사도 금광, 그리고 야스쿠니 신사의 탄생까지 이 책은 관심을 갖는다.

 현재의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요시다 쇼인을 알아야 할 것임을 저자는 누누이 강조한다.

 쇼카손주쿠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다는 것은 되새겨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