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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슴 - 한강

바람속 2025. 11. 29. 01:10

 한강의 이 소설은 읽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주인공 인영은 저자의 다른 책들과 유사하게 잡지사의 능력 있는 기자로 설정되었다.

 책에 등장하는 네 명의 인물들 모두 나름의 비참한 가족 환경을 갖고 태어났다.

 먼저 인영, 그녀의 어머니는 언니 민영을 낳은 뒤 인영을 낳을 때까지 세 번의 사산을 했다. 빛과 가난 말고는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은 아버지가 지병인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난 것은 그로부터 이 년 뒤, 인영이 세 살 때였다. 어머니가 파출부로 주방 보조일로, 노점상으로 나다니는 동안 10살 차의 언니 민영이 인영을 돌본다. 민영은 언제나 몸에 바람을 묻혀가지고 다니는 사람이다. 그녀는 집안에서는 못을 박고 바퀴벌레를 잡고 모기장을 치는 사람이었고, 학교에서는 장학금을 받는 우등생이었다. 등록금을 스스로 버는 것은 물론 어머니에게도 매달 생활비를 보태줄 만큼 바쁜 생활을 하면서도 어두운 안색을 짓는 일이 없었다.

 그녀는 첫 아르바이트 월금으로 인영에겐 스웨터, 어머니에게는 내의를,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는 중고 수동카메라를 샀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한 번도 그 카메라를 써보지 못했다.

 인영이 견뎌야 했던 유일한 힘든 일은 식구들이 돌아오기를 홀로 기다리며 저녁시간을 보내는 것뿐이었다.

 대학 일학년이 된 민영, 어머니는 쌈짓돈을 꺼내어 민영을 친구들과 이박삼일의 낚시여행에 보낸다.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여행이었다. 그러나 민영은 소형 밤낚싯배가 전복되면서 실종된다. 하나뿐인 구명용 튜브를 친구에게 던져주고 헤엄쳐 갔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언니가 죽은 지 꼭 십오 년이 되던 봄 어머니도 죽었다. 그때까지 어머니의 껍데기와 살았던 인영은 이후 혼자 남았으며, 혼자 남은 사람으로 강하게 생활해 왔다. 튜브를 누군가에게 던져주는 따위의 어리석은 짓은 결코 하지 않았으므로 서른을 넘기도록 안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결정적으로 믿지 않았으며, 누구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다.

 대학 졸업반 때, 우연히 언니의 중고 카메라를 발견한 후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직장생활 이 년 차가 되던 때부터는 바다를 찾아 바다를 찍는다.

 다음은 명윤, 인영의 대학후배다.

 그의 가족이 고향을 버리고 인천에 올라온 것은 맏이인 명윤이 열네 살, 둘째와 셋째 누이는 열두 살과 아홉 살, 막내 누이 명아가 일곱 살 때의 일이었다. 시골집과 논밭뙈기를 판 돈은 손바닥만 한 만둣집의 보증금으로도 빠듯했다. 어머니는 만두를 빚고 아버지는 주택가와 상가에 배달을 하여 근근이 월세를 내며 살아가던 어느 날 밤, 자전거를 타고 배달 나갔던 아버지는 뺑소니차에 치였다.

 사고를 낸 운전사는 머리와 다리를 다친 아버지를 자신의 차에 싣고 가다가 인적이 뜸한 공원 앞 벤치에 버려둔 뒤 달아났다. 보상금 한 푼 받지 못하고 아랫목 차지를 하게 된 아버지는 그때부터 숨을 거두던 날까지 십 년 동안 무력한 폭군으로 지냈다. 육 년 전 겨울 초저녁,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인지 목발을 짚고 서둘러 집을 나선 아버지는 눈 쌓인 철로에서 뒤로 미끄러져 즉사했다.

 명윤이 군 입대를 앞두고 휴학하고 있을 때, 열여섯 살의 명아는 집을 나간다. 이후 명윤은 부천의 맥줏집, 다음은 의정부에서 그녀를 찾아 데려왔지만 일주일을 못 넘기고 다시 달아난다.

 군대에서 휴가를 받을 때마다 명아를 찾아 헤매던 명윤, 전연학 뒤에는 주말과 방학 때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한동안은 시간이 날 때마다 누이의 흔적을 찾기 위해 헤매었다.

 명아를 찾는 것을 그가 포기 했을 즈음 어머니는 뇌일혈로 죽었다. 걸레를 한 손에 쥔 채 한방 구석에 엎드려 있는 것을, 시집간 둘째 누이가 조카를 업고 찾아왔다가 발견했다. 결국, 명아는 엄마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짧게 깍은 머리의 중학생 시절부터 글을 씀으로써만 존재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해 왔던 그는 지난 삼 년간 어떤 종류의 글도 쓰지 않았으므로 삼 년째 존재하지 않아 온 것과 같았다.

 다음은 장종욱,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군대에 들어가기 전의 일 년간 한 선배의 사진관에 빌붙어 살며 사진을 배웠었다. 군대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돌아왔지만 무력감속에 생활의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예의 선배를 찾아가 사진관의 허드렛일을 하며 작품을 찍어보기도 한다. 또 지포라이터와 액세서리를 육 개월동안 찍었다. 그리고 사진 자체를 혐오한다. 사물의 껍데기만을 핥을 수 있는 따름인 카메라라는 기계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런다 사흘 낮 사흘 밤을 무너진 갱도 안에서 버텼다는 광부들의 구조 장면이 생방송되는 텔레비전을 특보를 보다가 꽁지머리의 젊은 여자의 눈빛이 그의 뒤통수를 내갈겼다.

 그날 밤, 홀린 사람처럼 장은 야간열차를 타고 사고가 있었던 황곡으로 갔다. 이후 그 여자와 결혼을 하고, 광부였던 장인의 장례를 치르고, 아이의 유산을 겪고, 의선의 아버지 임씨의 도움 속에 광부와 탄광의 사진을 찍는다.

 의선의 아버지 임씨의 삶은 기묘하다. 광부였던 임, 스물두 살 때 사고로 맨 끝 막장에 동료 정과 갇힌다. 평소 천식을 앓던 정은 구조되기 다섯 시간 전에 숨을 거둔다. 정은 죽기 직전 '저 짐승 눈, 저 눈! 저 눈깔......!'을 외쳤다. 정의 시신과 함께 바깥으로 나왔을 때, 만산의 몸으로 갱도 앞에 서서 발을 구르고 있던 정의 아내는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여인은 아들인 아이를 조산하고 젖이 ㅌㅌ퉁퉁 불은 몸으로 아이를 안고서 읍내를 떠돌아다녔다. 임은 그 여자와 아이를 거두어 고향으로 갔다. 그 여자가 조산한 정의 아들은 지능이 정상이 아니었다. 임의 고향에서 여자는 임의 딸아이 의선을 낳는다. 아이를 낳으면 제정신이 드는 경우도 있다고들 하는데 여자는 끝내 깨끗한 의식을 되찾지 못한다. 의선이 여덟 살 되던 해에 여인은 남편이 막장 들어가기 전에 죽 끓여줘야 된다고 하면서 떠나버렸다. 이후 임은 아이들만 남겨둔 채 여인을 찾아 탄광촌이란 탄광촌은 다 뒤지고 다니고 있다. 

 소설은 길거리에서 나체로 달리다가 사라진 의선, 갑자기 인영의 방을 찾아와 함께 지내다 다시 사라지고, 그런 의선을 사랑하게 된 명윤의 이야기, 그리고 장종욱의 취재를 핑계 삼아서 사라진 의선을 찾아가는 두 사람의 여정을 따라간다.

 결국 이들 네 사람은 탄광의 막장속과 다름없는 상황을 각각 직면하고 이를 넘어서면서 나름의 해결책을 찾는다.

 인영은 의선이 태우다 만 마지막 사진을 다시 돌려받는다. 그것은 육 년 전 어머니의 뼛가루를 뿌리러 갔던 제주도 북해의 사진이다. 명윤은 누이동생 명아의 전화를 받는다. 명아는 광주에서 미용실을 하면서 아이를 낳고 살고 있다. 장은 췌장암으로 떠나간 아내의 장례를 치른다.

 의선은 황곡에서 어둔리를 지나 화전민 마을인 고향 연골을 찾아갔다가 바닷가 마을에 머문다. 사진을 인영에게 주었던 것만 확인될 뿐이다.

 스릴러 소설같은 느낌도 있다. 너무 가슴 아픈 상황이 예상될 때는 책을 덮고서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제목 '검은 사슴'은 깊은 땅속 암반 사이에서 사는 짐승이다. 천형처럼 어둠을 짊어진 이 짐승의 평생소원은 단 한 번만이라도 하늘을 본느 것이어서, 마주치는 사람들 한 테마다 바깥으로 나가는 길을 묻는데, 사람들은 뿔을 자르고 이빨을 뽑은 뒤 길을 막아 따라 나오지 못하게 한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보지 못하게 된 검은 사슴은 흐느껴 울다가 들쥐 새끼만 하게 쭈그러들어 숨이 넘어가거나, 어쩌다 운 좋게 암반 사이의 가느다란 틈을 비집고 나와 꿈에도 그리던 하늘을 보게 되면 햇빛을 받자마자 순식간에 끈적한 진홍색 웅덩이로 변해버린다. 이 이야기는 의선의 아버지 임이 의선과 장에게 들려준다.

 한강의 첫번째 장편소설이다. 인간 존재의 숙명성, 그리고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는 작가의 첫 여정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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