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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위한 희생 - 마거리트 히긴스

바람속 2021. 2. 24. 04:44

 이 책은 6.25 발발 이틀 후에 전선에 파견된 후 약 6개월간에 걸친 한 기자의 종군 기록이다.

 저자 마거리트 히긴스는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극동 지국장으로 1950년 5월말 발령을 받고 도쿄에 부임한 후에 6월 25일 북한의 남침 이틀만에 4기통 대형 수송기를 타고서 세 명의 다른 특파원과 함께 김포에 도착한다. 서울로 들어간 이들은 한강 인도교 폭파로 고립된 후 가까스로 보트를 타고서 도강에 성공한다. 이후 수원, 대전 등으로 이동하면서 초기의 공황을 직접 겪는다.

 서울이 적의 수중에 넘어가던 날 밤에 있었던 심야 브리핑에서 주한 미 군사고문단 직무대리 스털링 라이트 대령은 북한군의 탱크에 대해 이렇게 발언하다. '한국인들은 적의 탱크에 대해 병적인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전면적인 후퇴를 하는 이유 주의 하나도 바로 이런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들이 우리가 제공한 무기들을 제대로 사용할 줄만 알았어도 탱크를 대처하 수 있었을 겁니다.'

 마거리트 히긴스는 이를 미군이 적과 적의 장비에 대해서 얼마나 과소평가하고 있었는 지를 보여주는하나의 사례로 들고 있다.

 저자는 2.5인치 바주카포에서 발사한 포탄들이 괴물을 맞고 튀어나왔다고 묘사하고 있다.

 저자의 6.25 기술 중 나는 중공군의 개입에 대한 맥아더의 판단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과 이어진 북진의 과정에서 맥아더는 중공군의 참전을 상징적인 의미일 뿐이라는 데 패를 걸었으며, 폭탄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북한을 보고 체념하기를 희망했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중공과 북한에 대해 무지했는지 실감하게 된다.

 그외에 저자는 미 해병 1사단의 장진호 철수에 함께 하면서 그 처절한 현장을 생생하고 전하고 있다.

 영하 20도가 넘는 혹한속에서 12월 5일 미 해병 제5연대장 레이먼드 머레이 중령은 이렇게 그의 휘하 장교들에게 훈시한다. ' 새벽에 우리는 이곳에서 뒤로 전진한다, 사단의 명령이다. 우리는 낙오병이 아니라 해병으로서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다.'

 적게는 6개 사단, 많게는 8개 사단의 중공군(병력수로 추정하자면 8만에서 12만명)이 펼친 포위망을 돌파하여 미 해병 1사단은 2주에 걸쳐 함흥으로 '이동'하여 철수하게 된다.

 저자는 여성 종군기자에 대한 미군과 신문사의 편견에 당당하게 맞서는 과정도 적고 있다.

 저자는 1951년 1월 1일 이 책의 서문을 썼으며, 헌국 전쟁에 관한 저술 중 가장 빨리 나온 책이라고 한다.

 마거리트 히긴스는 이후에도 기자로서 활동을 하다가 1966년 1월 13일 베트남 여행 중 걸린 풍토병으로 45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이 책의 마지막은 영원히 귀감으로 삼아야 할 글로 끝난다.

 '한반도에서 우리는 준비하지 않은 전쟁을 치름으로써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또한 승리는 많은 비용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패배할 때 치러야 할 비용보다는 훨씬 저렴할 것이다.'

 이 글외에 23페이지 끝의 글도 남겨두고 싶다.

 '불행하게도 자유주의 국가들은 독재국가들이 야기하는 위협을 무시하는 고질적인 경향이 있다. 히틀러는 우리에게 그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떠벌렸었다. 북한인들도 그들이 무엇을 할느지 예고했고 중국인들도 그러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말한 사태의 발생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도무지 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