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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 - 황인경

바람속 2021. 3. 15. 23:07

 다섯 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머리말 끝에 작고한 호치민이 일생 동안 머리맡에 목민심서를 두고 교훈으로 삼았다고 적혀있다. 내가 읽은 책은 1992년 판으로 현재 개정판에 이 글은 빠져있다고 한다. 호치민과 목민심서에 대한 관련은 명백한 허위임이 밝혀졌다.

 책은 정약용이 살던 집의 문간방에 지내던 목수 천만호와의 인연으로 시작한다.

 21세의 정약용은 성실하고 겸손한 성품의 소목 천만호가 뛰어난 재간으로 정교한 물건들을 만들어내지만 생활에 곤란을 겪는 것을 알고서 솜 타는 기계를 연구하여 설계도를 그린다. 수차의 시행착오를 거쳐 솜틀 기계가 완성되고 천만호는 이를 바탕으로 거상으로 성장한다. 여기에서 처음 품목 선정에서 의식주 중 의에 관한 것을 제안한 형 정약전이 언급된다.

 천만호는 끝까지 정약용을 돕는 것은 물론 정약전의 부탁으로 우이보와 흑산도 주민들과 정약용의 둘째 아들 정학유까지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정학유는 농가월령가의 저자이기도 하다.

 과거에 합겨하고 관직에 나아간 정약용은 정조의 아낌없는 총애를 받게 되지만, 이로 인하여 역설적으로 당시의 집권층인 벽파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게되며 여기에 그와 친인척들이 천주교와 연관됨으로써 결정적 타격을 받게된다.

 그의 셋째형 약종은 신유박해때 순교하였으며, 조선 천주교의 개조로 꼽히는 이벽은 그의 매부이다. 아울러 윤지충은 외종형이며, 황사영 백서사건의 황사영은 큰형 약현의 사위다.

 1801년 40새의 나이에 경상도 장기에 유배된 약용은 황사영사건으로 같은 해 11월 전라도 강진현으로 귀양간 후 무려 18년을 지내게된다.

 그의 유배를 끝낼 기회도 여러차례 있었지만 이른바 송서파인 이기경, 홍낙안, 목만중과 약용의 암행어사 시절 악연을 맺은 서용보에 의해 그는 환갑을 앞두고 고향땅 경기도 광주군 마재에 돌아오게 된다.

 저자는 강진에서 그가 지은 방대한 저서들을 최대한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여기에 자신어보를 쓴 정약전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정약용은 전라남도와 많은 인연이 있다.

 16세에 아버지가 화순 현감으로 부임하면서 오게 된 화순에서 학문을 익혔고 강진에서 오랜 유배생활을 했으니 거의 그의 생의 삼분지 일을 전라남도에서 보낸 셈이다.

 그가 부인을 비롯한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정이 참으로 애절하다.

 기회가 닿는대로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볼 작정이다.

 물론 그의 작품도 직접 보고 싶다.

 경륜을 펼쳐보일 기회를 갖지못한 시대 상황이 내내 안타까웠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그의 저작이 이어진 것만으로도 다행이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진정 큰 인물 정약용을 마음으로 느낀 시간이었다.

 저자의 상상이 어디까지인지 밝혀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