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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 - 김훈

바람속 2019. 4. 4. 14:17

 조연주의 할아버지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지만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해방 후 늙은 말과 함께 할아버지는 경북 내륙 산간마을에 터를 잡았고 연주가 태어나기전에 늙은 말이 죽고, 연주가 초등하교 4학년때 할아버지도 죽었다.

 연주의 아버지는 해방되던 다음해 만주에서 돌아올때 여섯 살이었고 면사무소의 하위직부터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고, 5급사무관 계장이었을때 장기간에 걸쳐 음성적이며 관행적으로 계속되었고, 토착적이고 제도적이며 구조적인 갈취형 상납비리로 구속되어 수감 중 모범수로 석방되지만  칠개월만에 역시 죽는다.

 미대를 졸업한 연주는 이 개월분의 급여와 퇴직금을 받지 못한 채 오 년여의 직장 경력 중 두번째로 디자인 회사를 사직한 후, 2월 하순께 계약직 공무원 공채 선발과정을 거쳐서 민통선 안 국립 수목원의 전문 세밀화가로 채용된다.

 민통선 밖 읍내에 있는 이십 평형 직원아파트에서 홀로 지내는 연주는 1년간 복소초와 얼레지 꽃, 목련, 민들레, 진달래, 작약, 수련, 패랭이꽃, 도라지꽃, 옥수수, 서어나무, 목련의 겨울눈 등을 세밀화로 그린다.

 연주는 연구실장 안요한의 자폐아 아들 신우의 그림지도를 두 달간 하고, 신우가 안요한과 이혼 후 재혼한 생모와 살기위해 떠나는 과정을 본다.

 그리고, 중위 김민수를 통해서 6.25 정전 오십주년 기념사업인 전사자 유해 발굴사업을 통해서 찾은 유해의 세밀화 두 점을 이백만원을 받고서 그린다.

 연주가 그린 한 유해가 남긴 편지는 '어머니, 저는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풀 먹인 여름옷을 입고 싶어요'로 끝난다.

 연주는 김민수의 부탁으로 숲해설사 이나모의 문상도 간다.

 이나모는 군에서 부사관으로 삼십년 가까이 복무하고 심근경색이 악화도이어 의병제대 후 부대의 잔반을 배달하는 일을 십오년간 하다가 육십오세에 수목원의 숲 해설사로 십년을 지내다 죽는다.

 제대할 때가 되어 김민수는 떠나고 사흘 후에 연주는 단 한번의 좌회전으로 자등령을 등지고 다시 서울로 향한다.

 소설가 김훈은 2009년 국립수목원 홍보대사, 2015년 국립생태원 홍보대사였으며 진정 '숲'과 '숲' 글자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소설속 숲과 그곳에 사는, 살아온 것들에 대한 묘사를 겨우 이해하기 시작한 지금, 그의 글이 얼마나 대단하며 진심이 담긴 것인지 알 것 같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여생의 시간들이, 사랑과 희망이 말하여지는 날들이기를 갈구한다고 했다.

 숲의 1년, 여러 사람의 삶을 지나고서 이제 사랑과 희망이 연주에게, 나에게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