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나의 영화/2000년 이후 (494)
나의 기록
이 영화는 두고 두고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약간만 더 달렸더라면 한국 조폭영화의 한 획을 그을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난 언젠가 이 영화가 다시 리메이크되기를 꿈군다.자식을 죽인 자를 자식으로 받아들이는 어머니, 그 어머니를 위하여 살고 그리고 복수끝에 사라져가는 한 남자, 그를 김래원은 정말 멋지게 해냈다. 감독은 좀더 세심하게, 어머니의 살해와 살해범이 남긴 반지, 시의원이 된 조폭 두목과 경찰과의 커넥션 등 더 치밀하게 연출되었어야 한다. 희주를 짝사랑하다 그녀를 벽돌로 치고 조폭이 되는 단역의 역활 역시 좀더 깊은 묘사를 필요로 하지 않았을까? 조판수역을 비롯한 몇몇 배우들의 캐스팅은 영화와 어울리지 못했고 연기력 부족도 더러 눈에 뜨인다. 멋진 시나리오지만 연출은 그만큼 따라주지 못한 ..
이 영화를 끝까지 보기가 힘이 들었다. 영화와 사실이 댜큐멘터리로 섞이어 어지럽기도 했지만 그냥, 그들 적군파의 행적을 묘사하여 나열한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지속적인 관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도시게릴라를 자쳐하는 그들, 누드비치의 모습, 성의 해방과 함께한 그들의 모습은 많은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히틀러를 탄생시키고 그에게 동조하고 방관한 일반 독일국민의 모습이 오버랩되어졌다. 이들 적군파 역시스스로 히틀러화 되어 갔는 지 모른다. 가장 비판하던 그 모습을 따라서 말이다. 이런 아이러니는 꼭 이들만 아니라 많은 좌익 또는 진보집단내에서 흔히 발견되는 이유가 바로 혁명과 개혁의 딜레마 일것이고, 혁명과 개혁이힘든 이유가 될 것이다. 그들은, 계속되는 테러를 저지르고 결국 체포되어 재판과정중 ..
어설픈 영화의 결정판이다. 배우도 스트리도 액션도 다 고만고만한 영화다. 이런 영화를 개봉한 배짱이 부러울 따름이다. 그저 돈이 많아서 주체하지 못한다 해도 이런 영화는 노땡큐다. 아무 생각없이 보기에도 후회스럽다면 너무 지나치게 매도한 것일까? 적절한 인과관계도, 등장인물의 일관된 모습도 없다. 관객의 수준을 딱 초딩으로 한정하였나 보다. 이 영화에서 그래도 신선했던 것은 이범수와 이시영의 뽀뽀씬, 아랫입술을 문 이시영이 있어서 참 다행일 정도다 성동일, 그의 검사 캐릭터에 전라도 사투리를 믹스한 것이 그나마 신선해 보인다.감독 : 정용기출연 : 이범수, 김수로,이시형평점 : ★★
패전국이 된 독일의 우승, 그리고 6.25전쟁 후 분단국 한국이 처음으로 출전한 대회가 1954년 스위스올림픽이다. 이때 한국은 헝가리에 9대0, 터키에 7대0으로 패했다. 세계 최강 헝가리는 결승에서 독일을 만나 3대2로 패배한다. 전후, 독일인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은 월드컵 우승의 스토리를 한 소년의 눈으로, 그리고 후보 선수에서 결승골의 주인공이 된 선수의 눈으로 그려낸다. 그리고, 여기에 러시아에서 귀환한 전쟁포로의 자신과 가족찾기가 어우려진 스포츠 플러스 가족애 영화가 되버렸다. 2차대전후 독일의 아픔과 희망을 너무 담담하게 묘사한 것이 오히려 더 가슴에 와닿는, 특별하지않는 특별한 영화다.감독 : 손케 보르트만출연 : 루이스 클램로스, 피터 로메이어, 사스카 고펠평점 : ★★★
인도의 힘을 보고싶으면, 인도의 미래를 보고 싶으면 꼭 보아야할 여화다. 무굴제국의 전성기를 연 악바르대제와 그의 왕비 조다의 러브스트리가 화려한 색깔의 향연속에 끝없는 황홀경을 선사한다. 영화에 표현된 인도의 색감, 춤, 노래 등 모든 인도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다. 이런 이미지의 퍼레이드는 놀랍기만하다. 이슬람과 흰두교사이의 종교를 넘어선 사랑에 대한 완벽한 찬가가 울러퍼진다. 아마 가장 인도적인 블록버스터가 바로 이 영화일 것이다. 감독 : 아슈토쉬 고아리커 출연 : 리틱 로샨, 아이쉬아라 라이평점 : ★★★★
예수는 그의 죽음이 있기전 마지막으로 아버지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린다. 그리고 사탄은 그의 죽음으로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질 수 없다고, 그런 사람은 없으니 죽음에서 도망치라고 벗어나라고 유혹한다. 아마 이 모습은 죽음을 앞둔 모든 투쟁하는 사람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까지가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된다. 예수의 사형집행을 끝까지 피하려했던 본디오 빌라도,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집요한 유태인 사제들, 결국 예수는 십자가를 짊어지게 된다. 기독교에선 여전히 빌라도의 이름을 거명하여 그가 예수에게 고난을 주었다고 모든 의식을 통하여 끊임없이 저주함은 이해되질 않는다. 예수가 받은 십자가형의 진짜 모습을 이렇게까지 재현한 것은 처음일 것이다. 그리고 그 형벌의 도구가 한 종교의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