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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늪에 빠진 실패한 혁명가 스탈린 - 브렌다 하우겐

바람속 2018. 1. 24. 17:28

 1878년 12월 6일 그루지야이 고리라는 도시에서 태어난 요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주가시빌리의 구두장이인 아버지와 아들이 사제가 되기를 바라는 어머니를 부모로 두었다. 그가 11살때 주정뱅이에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 비사리온은 다른 사람과 싸우다 칼에 찔려 사망한다.

 어머니의 뜻대로 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요시프는 1898년 티플리스의 소규모 사회주의자 단체에 가입하면서 직업 혁명가의 길을 시작한다.

 학교를 중퇴하고 레닌이 이끄는 볼세비키의 일원이 되고, 시베리아의 유배생활과 여섯 차례의 탈출을 하게 된다.

 그 동안 결혼과 아들을 얻고, 1912년 레닌에 의해 볼세비키 중앙위원에 임명되고, 공산당 신문 '프라브다'의 편집자로 일하기도 한다.

 1917년 10월 혁명이 일어나고 스탈린은 1922년 4월 3일 러시아 공산당 총간사가 되어 권력의 핵심 중 한 사람이 되고, 1924년 1월 레닌의 사망 후 권력투쟁을 거쳐 반 세기동안 소련의 최고 권력자가 된다.

 그는 1929년 부터 '5개년 계획'을 실행하여 소련을 공업 선진국으로 바꾸려는 계획을 추진했으며, 반대파에 대해서 무자비한 숙청과 테러를 자행한다. 스탈린의 대규모 테러에 의한 사망자수는 적어도 700만명 이상 거의 2,0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역사가는 보고있다.

 스탈린은 1945년 8월 만주의 관동군을 공격하여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이끌어내는 한 축이 되었으며, 1953년 그의 사망후에 한국 전쟁도 휴전으로 마무리된다. 1930년대 고려인 이주정책과 함께 그는 우리의 역사에도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소련이 스탈린체제하에서 눈부시게 성장한 1929년 부터 1936년 사이에 서방 자본주의 국가가 대공황의 늪에 허덕일때는 소련의 공산주의가 세계의 미래로 각광받기도 했었다. 당시 스탈린은 민주주의보다 경제성장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으며, 자본주의에 맞서는 힘을 가져야 소련이 생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책의 후기에 나오는 글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민주화를 희생시켜 이루어 낸 산업화에는 더 큰 재앙의 씨앗이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