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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한 연구 - 박상륭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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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한 연구 - 박상륭

바람속 2020. 11. 3. 01:46

 오래전에 구입한 책인데 이제서야 완독을 했다.

 저자도 벌써 세상을 떠났다.

 제목부터 심상찮은 이 책은 문장의 낯설음이 책장을 넘기기 힘들게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괴이한 지명들과 그보다 더 괴이한 이야기들이 더 걸음을 더디게 만든다.

 그러나 주인공 나가 살인을 저지르고 서슴없이 수도부의 창녀와 인연을 맺는 부분부터는 다소 안도하게 된다. 제법 무도하고 무절제한 자의 이야기로 들어가면서 부터는 이 책이 우리의 삶을 그리고 있음을 알게되기 때문이었다.

 주인공 나는 뱃사공과 사공의 응석이 떠들썩한 갯가에서 태어났으며, 창녀인 어머니와 단 둘이 언덕위에 살다가 어떤 중의 불머슴이 되었으며, 그의 나이 서른 세 살에 스승의 곁을 떠나 유리로 수도하러 오게 된다.

 유리에서 그는 처음엔 그의 스승을 이어 존자라는 외눈 중을 살해하고 수도부의 창녀와 사랑을 맺고, 촛불중과  남색을 하고 이어서 그러나 살인죄를 벗어나기 위하여 마른 늪에서 고기를 낚으려 하지만 실패한다.

 이후 그는  읍내에 가서 설교를 하고 노동을 하며, 지도자인 장로 손녀의 지순한 사랑을 받지만 다시 유리의 늪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와 함께 했던 수도부의 여인이 촛불중에 의해 능욕되어 죽음을 맞는 것을 보살피게 된다. 그는 촛불중에 대한 복수대신 유리의 판관인 촛불중에 의해 눈이 멀게되는 벌을 받지만, 장로 손녀와 교회 목사 사생아의 딸의 보살핌을 받는다.

 그리고 읍내의 형장에 끌려가 불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죽음속에서 새로운 탄생과 깨달음의 세계로 열리는 것이 주문의 형태로 읊어지면서 마무리된다.

 주인공 나의 행적은 선불교에 기반을 두고서 기독교, 밀교에 여러 신화가 함께 섞여서 짜여져 있다.

 살인과 성욕으로 가득 차있는것 같은 '나'가 점점 희생과 사랑의 화신으로 변하여 가는 과정이 한 고승의 생애처럼 펼쳐진다. 맹인이 된 '나'가 형장의 책임자가 강요한 씨름에서 이기는 장면은 강한 울림을 주지만 책의 전체 내용에 비하여 낯설다.

 분명코 한국문학의 새로운 세계이자 연구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