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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록
책의 중간까지는 대체로 기존에 나온 수많은 이순신 전기와 다를바가 없다. 이순신과 그와 관련하여 제기되어온 다양한 의문점에 대해서도 저자는 그 실체적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순신의 업적에 대하여 소개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지사풍이거나 연설풍의 글이 눈에 거슬리기도 하지만 저자의 이순신에 대한 존경과 열의만큼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글이었다. 책의 마지막 장 '역사적 평가와 인간적 모습'에서 기존의 책보다 훨씬더 깊은 내용을 소개한 점이 가장 특기할 부분이었다. 국내의 평가보다는 주로 외국과 외국인의 시각으로 본 평가였는데, 특히 당시 이순신과 함께 마지막 노량해전을 치뤘던 명나라 제독 진린이 선조에게 보낸 글의 전문을 본 것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진린의 글같이 이..
이순신에 대해서 세간에 무지로 제기되거나 의도적으로 그려온 여러 의문들에 가장 명쾌하게 그 답을 제시한 책으로 보인다. 원균에 대하여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제시된 자료를 통하여 얼마나 터무니 없는 왜곡이 임진왜란 당시를 거쳐서 최근에 다시 이루어졌는지 저자가 밝힌 내용은 명쾌하다. 그 동안 원균을 부풀러온 많은 사람들이 이제 그 답을 주던지,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잘못을 밝혀야 할 것이다. 이순신에 대한 선조의 태도는 여전히 미스테리다. 그는 조선의 군주가 아니라 명나라의 신하로 여겨지기까지 하다. 다시금 선조에 대한 긍정적인 재평가가 이루어지고있는 시점에서 이에 대한 명쾌한 해석과 반론이 있기를 기대한다. 이 책은 원균외에도 이순신을 다룬 여러 작품에 대한 반박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소설과 드라마..
이 책은 2008년도 출간 된 저자의 책 '이순신 파워인맥 : 7년 전쟁을 승리로 이끌다'의 개정판이다. 내용은 이전 책을 밑바탕으로하여 수정 보완하고, 인물 탐구의 오류도 바로잡았다고 한다. 새롭게 3명의 인물을 추가하였다 한다. 이전 책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인맥이란 단어의 사용은 여전히 거북하다. 인맥의 사전적 의미는 '정계, 재계, 학계 따위에서 형성된 사람들의 유대 관계'이다. 저자가 소개한 33인의 인물들은 그의 막하에서 활동한 부하를 중심으로 그에게 도움을 준 조정의 대신, 선배에 명장 진린에 심지어 원균까지 포함된다. 넓게 인맥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인맥의 부정적 의미도 고려하여, 다른 단어를 사용했음 한다. 차라리 '이순신과 함께 한 사람들'이 어떨까? 33인의 인물 중 여전히 원균에 대한 ..
2005. 4. 28. KBS에서 방영되었다. 전체적으로 이순신에 대한 개략적인 탐구 프로그램이다. 조총과 총통으로 대표되는 양국 무기의 비교, 양국 선박, 그리고 이를 운영한 전술까지 이순신의 승리의 조건을 개괄한다. 이순신의 한산대첩과 그 영향, 즉 평양과 함경도 까지 진출했던 일본군이 왜 서울로 다시 후퇴했어야 했는 지를 조명한다. 그리고 한산도에 진을 치고 적과의 대치를 한 이유와 한산도의 지리적 중요성에 대하여 실증적으로 입증한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이순신의 견내량 사수작전인 것이다. 이순신의 공격을 두려워한 일본은 웅천, 안골포, 가덕과 거제도의 영등포, 송문포, 장문포에 성을 쌓아 부산을 방비하였다. 이후 원균에 의해 거제 칠천도에 정박하다 전멸한 조선수군과 그에 대한 설명역시 가슴아프지만..
노량해전에서 실록에 갑자기 등장하는 미스터리의 인물 손묵욱의 실체를 파헤친다. 실제로 손문욱이라는 인물은 이순신이 적탄에 의해 전사한 후 이순신을 대신하여 지휘하였다고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실록 및 다른 기록에는 장군의 조카 이완과 송희립이 대신하여 지휘한 것으로 나와있으며 이를 정설로 인정하고 있다. 손묵욱은 일본에 어떤 연유{포로?}인지 가게되어서 대마도주의 가신 야나가와 시게노부와 밀점한 관계를 맺게되고 대마도주의 장인인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장으로 부역한 것으로 보인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양자이며, 도요토미에 대한 반란을 진압하고 그의 첩과 내통했다 고니시의 부장으로 파견되었다는 손묵의 주장은 어떠한 근거가 없다. 이런 내용은 실록 1597.4.25자 경상도 관찰사 이용순의 서장에 나와 ..
한산대첩이후 부산을 직접 공격한 이순신은 이후 한산도에 진을 옮겨서 통영과 거제사이의 견내량을 지키게 된다. 일본군역시 거제도와 해안에 왜성을 쌓고 이순신의 부산진입을 지킨다. 이순신의 이 차단전에 대해서 쿠슈대학 조선사연구실 왜성전문가 나카니시 다케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를 들어 200석을 실은 배 한척이 평양에 도착하면, 평양의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는 3일동안 그것으로 먹고 지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만약 부산에서 육로로 운반하려면 말이 500마리 필요합니다. 그리고 물론 운반할 500명과 호위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평양과 함경도까지 진격했던 일본군이 경상도 지방으로 후퇴할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다. 이후 명량해전에서 울돌목의 급류를 앞에하고 싸운다. 6시간 단위로 바뀌는 수로를 이용..